나의 고등학교 시절과 입학하게 된 계기
나는 특성화 고등학교를 나와서 진학보다는 취업에 포커싱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술연구반이라는 특수 동아리에 들어가 주로 기능경기대회 IT네트워크시스템 종목 문제들을 풀이하고는 했었다.
열심히 했었고, 덕분에 각종 대회에서 수상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4일 동안 진행되는 전국대회 도중, 3일차 문제를 다 풀고 채점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리눅스 서버의 부트로더가 죽어서 채점을 아예 진행하지 못했다.
결국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나 삼성 특별 채용과는 인연이 없었고, 솔직한 심정으로 한동안 괴로웠다.
사실 1, 2일차에 매우 높은 점수를 받았고, 3일차에 출제됐던 문제가 경기도 대표인 나의 문제였기 때문에 너무 허망했다.
그렇게 전국대회를 망치고 나에게 선택지는 몇 가지 없었다.
고졸 신분의 네트워크 엔지니어, 대학 진학 정도였다.
집안 형편이 그렇게 넉넉치 않은 탓에 부모님께 등록금을 도와달라고 하기에는 어려웠다.
때문에 등록금을 지원해 줄 수 있는 학과로 알아보게 되었고, 그 중 조기취업 계약학과를 선택해 한국공학대학교와 구로디지털단지역에 있는 IT 중소기업에 지원해 합격했다.
(조기취업계약학과는 입학 면접 시 한국공학대학교 면접과 기업 면접을 동시에 진행한다.)
조기취업 계약학과의 특성
아래 내 대학교 생활들을 이해하려면, 조기취업 계약학과의 특성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조기취업 계약학과는 1학년 때 2년치 학점을 계절학기를 다 들어가며 이수한다.
이후 2학년~3학년 때는 월~금 회사에 근무하고, 금요일 야간과 토요일 주간부터 야간까지의 시간을 할애하여 졸업 학점을 채우고, 마지막 학년에는 졸업 작품을 전시해야 학사 졸업 자격이 갖춰진다.
3년 만에 학사 졸업증을 따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일정이 촉박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위 내용들은 한국공학대학교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대학마다 다를 수 있다.
대학교 1학년 생활
사실 별 생각없이 들어왔던 대학 1학년 생활이었기 때문에, 나는 어떤 커리어로 나아가야될지 갈피를 크게 잡지 못했다.
그래서 합격한 회사에 개인적으로 연락해 부장님과 이야기하며 클라우드 시장에 대해서 시간 날 때마다 공부했던 것 같다.
AWS, Azure, GCP의 시장 성장세를 조사하거나 재직 회사의 업무들에 대해서 공부하곤 했다.
재직 회사의 업무에 대해 알게 될 수록 내가 원했던 엔지니어 방향과는 사뭇 많이 달랐다.
주로 기술 지원을 하는 형태의 엔지니어링이였고, 그마저도 Azure 보다는 Microsoft 365 라는 MS의 SaaS 형태의 제품에 대한 지원이 많다는 것을 1학년 생활 도중 알게됐다.
대학교 사무실 담당자분들과 연락하며 회사를 바꾸고 싶다고 말씀 드렸지만, 회사에서 먼저 자르지 않는 이상 이직은 어렵다고 하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치 않는 업무를 하게 될 생각에 미래가 걱정됐었다.
걱정이 앞섰지만, 눈 앞에 보이는 것부터 열심히 하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대학 생활에서의 전공 수업들을 열심히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네트워크 라우팅, 서브넷팅, 각종 서비스 구축 등만 해보다가 이때, 처음으로 프로그래밍이란 것을 접한 시기이다.
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어려워만 보였던 C언어, Python 등 프로그래밍 언어들이 사실 재밌다는 것을 깨닫게 되던 시기이다.
대학교 2학년 생활
대학교 2학년이 되자, 본격적으로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학습했던 기초적인 네트워크 지식 및 서버 인프라 지식 덕에 클라우드 형태의 서비스들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회사 업무에도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고, 회사 사람들과 정이 들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 인간적으로 많이 성장했던 시기이다.
나의 모난 모습들, 사회의 첫 걸음을 뗐을 때의 부족했던 모습들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2학년 때는 적응하느라 참 힘들었던 것 같다.
특히 회사 적응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살인적인 스케줄들이 체력적으로 부담됐다.
회사 퇴근 이후 듣는 전공 수업이나 주말에도 이어지는 전공 수업은 나를 지치게 했다.
종종 전공 수업 대신 수면을 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수업은 열심히 들으려고 했다.
그리고 이쯤부터 본격적인 조별과제들이 시작되었는데, 대학 동기들도 회사원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조정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이 시기에 만난 친구들은 군대에 입대한 지금도 잘 연락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학교 3학년 생활
대학교 3학년이 되자, 회사 적응을 떠나 회사 시스템들을 조금씩 바꾸려고 노력했다.
회사에서는 견젹서를 항상 일일이 만드는 작업이 있어서 openpyxl 등 다양한 파이썬 라이브러리를 이용해 자동 견적서 제작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할 수 있는 선에서 자동화 작업들을 만드려고 노력했다.
기초적인 회사 업무들이 익숙해지고, 단순 반복작업이었던 회사 업무들이 점차 자동화가 되어갈 때 내 육체가 많이 편해졌다.
편해진 만큼, 내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 회사에서 계속 근무하면 앞으로의 커리어가 어떻게 될 지 뻔했다.
사실 재직 중에도 커리어의 방향성 때문에 퇴사하고 싶었지만 퇴사 시 자동으로 대학도 제적되는 기이한 구조여서 그러지 못했다.
이 와중에 회사는 졸업 이후에도 재직하길 바라셨고, 산업기능요원 TO 제공 및 개발자로의 직무 전환, 연봉 협상 등을 제안해 주셨다.
이 시기에 고민했던 내용은 크게 2가지이다.
첫 번째 고민은 '어떻게 하면 빠르게 서비스 기업의 개발자(백엔드 혹은 DevOps)로 일할 수 있을까?' 였다.
이 고민의 해답은 군대에 입대하여 군대에서 취준 생활을 해보는 것이었다.
군대라는 곳은 제한된 환경이긴 하지만 나로서는 병역의 의무를 책임지는 것이 시급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선택했다.
물론, 산업기능요원이라는 좋은 기회도 있었고 실제로 TO도 받았었지만 재직 회사에서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한다면 MFC 등 MS 관련 진영으로 시작하게 될 것 같았고 그리 썩 좋은 개발 환경이지 않은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과감하게 포기했다.
특히 내가 원하는 서비스 기업에서 원하는 테크 스택과는 좀 거리감이 있어 커리어의 방향과는 다소 멀어보였던 것이 컸다.
군대 복무 기간동안 공부 시간이 보장되길 원했기 때문에 공군을 선택하였고, 고등학교 때부터 익혀놓은 네트워크 지식과 인프라 지식을 활용하여 정보보호병이라는 전문 특기병에 지원해 합격해서 나름 많은 체계들을 만져볼 수 있는 곳에서 복무 중이다.
두 번째 고민은 'DevOps와 백엔드 개발자 중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였다.
이 고민의 해답은 둘 다 해보기 전까지는 함부로 고르기 어려울 것 같아 졸업 작품에서 두 포지션을 동시에 맡는 초강수를 두었다.
조별과제와 실제 업무의 수준은 당연히 괴리감이 있겠지만, 동기들이 대부분 현업 개발자이므로 좋은 경험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마지막 발걸음, 졸업 작품 전시회
나는 졸업 작품 전시회에 대해 스스로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내 대학 동기들은 2년차, 3년차 개발자가 되어가는 반면에 나는 어쩡쩡한 영업용 클라우드 엔지니어, 기술지원 엔지니어 경력만 쌓여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수상하고 싶었다.
좀 비약적으로 표현하자면 졸업 작품 전시회가 나에게는 "내가 개발자로 커리어 전환을 할 수 있는가?" 에 대한 객관적인 답변이었기 때문이다.
졸업 작품 주제는 MSA 아키텍처와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의 블로그 - 채용 연계 플랫폼이다.
설계 당시의 수준과는 다르게 완성도는 낮은 프로젝트이다.
그럼에도, 각종 페이퍼에는 우리가 추구했던 게 뭔지 시도하고 있던 게 무엇인지 최대한 구체적이고 표현했다.
서비스는 겨우겨우 완성해 냈지만 형편 없었다.
MSA 아키텍처라면서 제대로 아키텍처 구현도 해내지 못했으며, 코드 컨벤션도 엉망이었다.
절대 좋은 프로젝트라고 할 수는 없었다.
프로젝트 제출 기간이 가까워지며 뼈저리게 느꼈다.
얕은 이해와 섣부른 사전판단이 얼마나 무서운지 말이다.
그럼에도, Githuc Actions를 활용해 자동 배포 환경을 구축했고 Docker-Compose, Azure QA Resource, Azure Production Resource 등으로 개발 환경을 나눠 순차적으로 배포하는 등 1년 사이 다방면의 경험을 쌓았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개발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어떤 진영의 개발자로 성장하고 싶은지 정할 수 있게 됐다.
"나는 JVM 계열의 백엔드 개발자가 되고 싶다!"
참 오래도 걸렸다.
주변에 물어봤으면 쉬웠을텐데, 그러면 선택한 직업이 되는 과정에서 내가 간절해지지 않을 것 같았고 흔들릴 것 같았다.
졸업 작품 전시회의 결과, 그리고 졸업, 현재
[졸업 작품 전시회의 결과]
졸업 작품 전시회는 창피하게도 최우수작에 수상되었다.
물론 모든 기능들은 정상적으로 구현되었고, 대학생 수준에서는 나쁘지 않았던 프로젝트인 것은 맞지만 객관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내가 목표했던 것들을 수행하지 못하여서 참 아쉬웠다.
조장으로서 정말 힘들었다.
각기 다른 직장에 재직하고 있는 조원들과의 마찰도 분명 있었고, 개발 역량이 각자 다르고 열정도 달라서 개발 산출물이 나오는 속도도 서로 달랐다.
마찰이 있을 때마다 감정은 최대한 빼려고 노력했고, 우리가 팀으로서 해야하는 일이 지금 무엇인지를 항상 생각했던 것 같다.
팀원들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심어주었었고 내가 손수 먼저 열정을 보여준 적도 많았다.
심지어는 강의실에서 밤샘 코딩하며, 강의실 책상 위에서 잔 적도 있었다.
프런트엔드 개발자였던 대학 동기와는 2주에 1번꼴로 금요일날 학교 근처에 모텔을 잡고 개발하고 다음날에 같이 등교했던 기억이 있다.
열심히는 했지만 미숙했던 나의 첫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나 나의 커리어에는 포함되기 부끄럽지만 나를 개발자로 이끌어준 정이 많은 프로젝트이다.
[졸업]
이후 졸업하였고, 내 20대 초반을 녹였던 대학 생활과 회사 생활을 마쳤다.
회사 생활에서는 앞으로의 커리어에 있어서 직접적인 이점들을 얻지는 못했다.
백엔드 개발자와 관련된 업무를 진행해 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리어를 넘어 나라는 사람을 그려가는 데에는 큰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생각한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다양한 서비스 사용자들과 소통하면서 사용자들이 원하는 중점적인 내용을 쉽게 파악하는 능력이 성장했다.
2. 회사 도메인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회사 사람들 간의 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3. 비즈니스적인 소통 시 자신의 감정은 빼놓고 우리 팀의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4. 개발자가 서비스의 버그를 FIX 하는 동안 누군가(대체로 기술지원 엔지니어...)는 사용자의 불편함을 직접적으로 공감해야 한다.
공감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젠틀한 단어 선택을 하진 않기에 멘탈적으로도 많이 성장한 것 같다.
5. 모난 말투를 들어도 그 안에 숨겨진 참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게 됐다.
대학 생활에서는 학과 특성상 회사의 업무에 더 치중해야 하기 때문에 각종 공모전이나 동아리 활동에는 제약이 있어서 아쉬웠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대학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최대로 얻으려고 노력했고, 이뤄내서 기쁘다.
사실 IT 업계는 학점이 중요하지 않다고들 말하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공 과목들이 곧 컴퓨터 공학의 근간이라고 생각했고, 눈 앞에 보이는 거라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이렇게 짧고 방향이 잘못됐을 수는 있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경험한 것들이 나의 커리어에는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대부분의 과목들을 A+ 성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고, 목표로 했던 평균 학점(4.4/4.5)을 달성할 수 있었고 덕분에 상도 수상했다.
2. 내가 참여했던 모든 조별과제에서 팀장을 맡았고, 나의 진심과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많이 발전했다.
3. 현업 개발자 신분이었던 동기들과의 협업 과정에서 느낀 경험들은 내가 어떤 개발자로 성장해야 하는지에 대해 일깨워줬다.
4. 비록 내가 목표로 했던 수준 정도로 완벽하게 끌어올리지 못한 졸업 프로젝트이지만, 가능성과 노력을 인정받아 최우수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5. 어떻게 하면 팀원들에게 동기부여를 줄 수 있는지 많이 깨달았다.
- 팀의 공동 목표, 솔선수범 정신, 우리가 왜 이걸 해야하는지? 라는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 등
언젠가는 위 경험(회사, 대학)들이 회사 생활 또는 나의 삶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현재]
현재는 산업기능요원 대신 공군 정보보호병으로 복무하며 커리어 전환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지금도 내 이야기를 들은 군대 동기들이나 선임들, 후임들이 물어보곤 한다.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냐고 말이다.
솔직히 후회 안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뚜렷한 목표를 향해 방향을 잃지 않고 있어서 행복하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군대를 직접 선택해서 들어온 나, 행복하다.
물론 다른 병사들처럼 전역날만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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